

"군은 제 몸에 재능을 모아서/ 집안이나 다스렸네/ 어째서 나라에는 안 쓰이고/ 겨우 군현이나 다스렸나 / 조정에서 활개 치지 못하고 / 광야의 의표(儀表)가 되었네/ 왜 뿔 하나인 기린으로 와서/ 천박한 사냥꾼에게 잡혔던가."
현동 정동유(1744~1808년)의 막역지우였던 초원 이충익(1744~1816년)은 벗의 묘지명에 이처럼 쓰고 슬퍼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벗이 그 재능을 조정에서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현동은 높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실무 비중이 많은 직책에 머물렀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를 괘념치 않았다.
외려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한두 가지 일을 하였거나 경전의 미묘한 뜻을 밝힐 한두 마디 말을 남겼다면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그가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건 학문과 글쓰기였다. 그는 경전의 미묘한 뜻을 밝힐 한두 마디 말만 남긴 게 아니라 아예 그 울타리를 넘어섰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을 두고 냉철히 세상을 직관했고, 학문 전체를 아우르는 숱한 말을 남겨 후대의 본보기가 됐다.
이 책 '주영편'은 그런 현동의 정신이 집약된 대작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한두 가지 일을 하였거나 경전의 미묘한 뜻을 밝힐 한두 마디 말을 남겼다면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그가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건 학문과 글쓰기였다. 그는 경전의 미묘한 뜻을 밝힐 한두 마디 말만 남긴 게 아니라 아예 그 울타리를 넘어섰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을 두고 냉철히 세상을 직관했고, 학문 전체를 아우르는 숱한 말을 남겨 후대의 본보기가 됐다.
이 책 '주영편'은 그런 현동의 정신이 집약된 대작이다.
그는 죽기 몇 해 전 한평생 경험하고 사유한 지적 훈련의 결정체를 이 책에 모두 쏟아부었다.
현동의 '주영편'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위당 정인보(1893~1950년)는 "범연히 끌어들인 소재가 없고, 실속 없이 구색만 갖춘 주제가 없다"며 상찬했다.

'주영편'은 총 202개 항목으로 나뉜다.
분량에 구애됨이 없이 다양한 주제를 떠오르는 대로 적어 내려갔다.
위당은 "지리와 천문, 역법과 풍속, 언어와 문자, 금석과 토양, 명물과 호칭에서부터 과거와 현재의 일화나 먼 나라 외국어까지 다루고 있다"며 이 책의 속성을 명료히 밝혔다.
현동은 주제별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입증하면서, 나름의 견해를 꼭 첨가했다.
현동은 주제별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입증하면서, 나름의 견해를 꼭 첨가했다.
지식과 정보를 사리에 맞고 공정하게 바라봤고, 공자나 맹자를 판단의 근거로 내세우지 않았다.
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이런 대목.
"대체로 경서의 주석은 과거를 보는 유생이 과거시험 문장을 짓는 것과 같아 시험지를 앞에 두고 억지로 찾아 쓰다 보면, 이처럼 마음속에 평소에 간직하던 의리와 배치되는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그 주석의 한 구절 한 글자에 대해 감히 맞느니 틀리느니 의견을 내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화를 내고 소란을 피우면서 '선배 학자에 배치된다'라고 말한다." (하권 29칙 '경서의 주석')
현동은 경서 절대주의를 혐오했다.
"대체로 경서의 주석은 과거를 보는 유생이 과거시험 문장을 짓는 것과 같아 시험지를 앞에 두고 억지로 찾아 쓰다 보면, 이처럼 마음속에 평소에 간직하던 의리와 배치되는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그 주석의 한 구절 한 글자에 대해 감히 맞느니 틀리느니 의견을 내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화를 내고 소란을 피우면서 '선배 학자에 배치된다'라고 말한다." (하권 29칙 '경서의 주석')
현동은 경서 절대주의를 혐오했다.
공자, 맹자, 주자 등 경서를 비롯한 모든 문헌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봤고, 통념과 상식을 철저히 의심했다.
경서에 입각해 권위를 내세우는 학자의 주장에는 가감 없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그런 학문적 태도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1596~1650년)의 '방법적 회의'에도 비견한다.
'주영편'은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더불어 '인권' '정의' '윤리' 등의 보편적인 가치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노비제도에 대해서는 "양반들이 자신만 이롭게 하려는" 의도에서 형성되고 유지됐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며 시대적 급진성을 드러냈다. "나 또한 오늘 당장 모든 것을 개혁해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하늘이 처음 생명에 부여한 의도를 따져본다면 이보다 더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없다고 본다."(하권 89칙 '노비제도 혁파')
'주영편'은 '낮이 긴 여름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지나친 겸양의 표현일 뿐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흥미롭고 신선하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대학자의 숨결이 그 안에 오롯이 묻어난다.
[김시균 기자]
'주영편'은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더불어 '인권' '정의' '윤리' 등의 보편적인 가치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노비제도에 대해서는 "양반들이 자신만 이롭게 하려는" 의도에서 형성되고 유지됐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며 시대적 급진성을 드러냈다. "나 또한 오늘 당장 모든 것을 개혁해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하늘이 처음 생명에 부여한 의도를 따져본다면 이보다 더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없다고 본다."(하권 89칙 '노비제도 혁파')
'주영편'은 '낮이 긴 여름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지나친 겸양의 표현일 뿐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흥미롭고 신선하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대학자의 숨결이 그 안에 오롯이 묻어난다.
[김시균 기자]